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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어귀를 채우는 고소한 두부 냄새

by 행복하루:) 2025. 9. 9.

어느 골목을 걷다 보면 유난히 발걸음을 붙잡는 냄새가 있습니다. 갓 만든 따끈한 두부에서 풍기는 고소한 향, 그리고 구수한 청국장이 끓는 냄새. 오늘 소개할 곳은 바로 40년 넘게 맷돌을 돌려 손두부를 빚어내고 있는 할머니의 작은 두부 가게입니다. 세월의 무게만큼 단단히 쌓인 신뢰와 맛 덕분에 이곳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식탁의 심장’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골목 어귀를 채우는 고소한 두부 냄새
골목 어귀를 채우는 고소한 두부 냄새

 

맷돌 위에서 피어나는 정성과 시간

이 두부 가게의 아침은 이른 새벽에 시작됩니다. 할머니는 콩을 씻어 물에 불려두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부터 맷돌 앞에 앉습니다. 요즘에는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대신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맷돌을 고집합니다.

"맷돌로 갈아야 콩물이 살아 있어요. 두부가 더 고소하고 단단하지."

할머니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하십니다. 맷돌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치 오래된 음악처럼 골목을 울립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동네 사람들은 "아, 오늘도 두부가 나오겠구나" 하고 알게 된다고 합니다.

맷돌을 돌려 나온 콩물은 큰 가마솥에 부어 끓여내고, 천으로 곱게 걸러냅니다. 이어서 간수를 부어 응고시킨 후, 나무틀에 넣어 꾹꾹 눌러낸 것이 바로 손두부입니다. 흔히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매끈한 두부와는 다르게, 손두부는 울퉁불퉁한 결이 살아 있고, 씹을 때마다 고소한 콩 향이 터져 나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아침마다 두부를 사 가 밥상에 올리고, 아이들은 따끈한 두부 위에 간장을 톡 떨어뜨려 간식처럼 먹으며 자랐습니다. 이 작은 두부 가게가 세대를 이어 가족의 식탁을 지켜온 셈입니다.

 

청국장에 담긴 세월과 건강

할머니의 가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청국장입니다. 두부만큼이나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지요. 콩을 삶아 따뜻한 온도에서 발효시키면, 특유의 구수한 향이 집안 가득 퍼집니다.

"예전엔 청국장 냄새가 난다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요즘은 몸에 좋다고 젊은 사람들도 찾으러 와요."

실제로 청국장은 단백질, 유산균, 비타민이 풍부해 장 건강에 좋은 발효식품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건강에 좋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청국장은 그보다 더 깊은 맛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월이 만들어낸 ‘기억의 맛’일 것입니다.

겨울이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게 안에서 청국장 찌개가 끓어오릅니다. 뜨끈한 밥 한 숟가락에 청국장을 얹어 먹으면, 잠시나마 어린 시절 외갓집 부엌에 와 있는 듯한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단골들은 "이 맛이 있어 오래 살아온다"며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말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골목과 함께 늙어가는 가게, 그리고 기억

시간이 흐르면서 골목의 풍경도 변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고, 세련된 음식점들이 생겨났지만, 이 두부 가게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게 간판은 오래되어 글자가 희미해졌고, 나무 문짝은 삐걱거립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오히려 이곳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할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부 팔아서 큰돈 버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사람들 밥상에 보탬이 되는 게 좋아요."

어떤 손님은 결혼 전부터 두부를 사 먹었고, 이제는 손자와 함께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가게가 세대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는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단골들도 늘었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 가게가 오래 남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부 가게는 단순히 두부와 청국장을 파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추억과 마음을 이어주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잊히지 않을 손맛의 기록

이 작은 가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단순히 ‘맛집 리뷰’를 쓰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 안에는 ‘사람’과 ‘시간’, 그리고 ‘기억’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맷돌을 돌리며 흘린 땀방울, 구수한 청국장 냄새에 담긴 세월, 그리고 이 골목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 그것이 바로 할머니 손두부 가게의 진짜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