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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퍼지던 기름 냄새의 추억

by 행복하루:) 2025. 9. 6.

어릴 적, 시장 골목을 지날 때면 코끝을 간질이던 냄새가 있었습니다. 바삭하게 튀겨진 닭의 기름 냄새, 양념에 버무려 달짝지근하게 익어가던 붉은 통닭 냄새 말이지요.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그 냄새는 아이들에게는 “오늘은 특별한 날”을 의미했고, 어른들에게는 “고단한 하루 끝의 작은 위로”를 의미했습니다.

70년대부터 시장 한쪽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통닭집들은 그 자체로 ‘시간의 보관소’입니다. 양념은 조금 달라졌을지 몰라도, 기름 냄새와 가게를 채우는 활기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한결같은 기름 냄새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골목마다 퍼지던 기름 냄새의 추억
골목마다 퍼지던 기름 냄새의 추억

 

기름 냄새로 시작되는 저녁 – 시장의 풍경

저녁 무렵, 시장 골목 입구에서부터 진한 기름 냄새가 퍼져 나옵니다. 갓 튀겨낸 닭이 철망 위에서 기름을 톡톡 떨구고, 튀김 냄비 안에서는 또 다른 닭이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지요. 줄지어 서 있는 손님들, 봉지째 들고 나가는 가족들, “오늘은 치킨이다!” 외치던 아이들의 환한 얼굴.

지금은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골목마다 있지만, 예전에는 이런 ‘시장 통닭집’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통닭은 종이봉투에 담아주던 기름 묻은 흔적마저 맛의 일부였고, 뚜껑이 덜 닫힌 양념 봉투 속 붉은 양념이 집까지 오는 길 손가락을 물들이곤 했습니다.

시장 통닭집의 기름 냄새는 단순히 닭을 튀기는 냄새가 아니라, 하루를 버틴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같은 냄새였습니다.

 

변하지 않는 손맛 – 70년대 양념·후라이드의 역사

통닭집 주인들은 대개 70~80년대부터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이어온 분들이 많습니다. 튀김 기계는 낡았지만 손질된 닭을 빠르게 옮기고, 양념을 직접 섞어 붓는 손길은 여전히 능숙합니다.

초창기의 후라이드 치킨은 지금처럼 바삭한 크런치 식감이 아니라, 고소한 기름 맛이 진하게 배어 있는 단순한 튀김이었습니다. 반면 양념 통닭은 고추장과 물엿, 간장, 설탕을 비율대로 넣어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콤한 ‘국민 소스’가 특징이었지요.

지금의 다양한 치킨 메뉴와 비교하면 단출하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세월을 버티게 했습니다. 가게마다 비밀처럼 이어온 양념 레시피, 기름 온도를 맞추는 감각, 닭을 뒤집는 타이밍. 모두가 오랜 경험이 빚어낸 시장 통닭집만의 역사입니다.

 

시장과 함께 늙어가는 가게 – 기록해야 할 이유

시장 통닭집은 단순히 닭을 파는 공간이 아닙니다. 시장의 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고, 오랜 세월 단골로 남아 있는 손님들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연결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집 첫 치킨이 여기였어.”
“아버지가 월급날 사오던 게 딱 이 맛이야.”

이런 말들이 통닭집 주인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자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많은 시장 통닭집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물결 속에서, 오래된 간판은 하나둘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이 오래된 기름 냄새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시장 통닭집은 단순한 맛집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기억을 지켜온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시장을 지나가다 기름 냄새가 풍겨온다면, 발걸음을 멈춰보는 건 어떨까요? 그 냄새 속에는 수십 년을 지켜온 사람들의 손맛, 시장의 역사가 배어 있습니다.

바삭한 한 조각, 달짝지근한 한입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치킨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을 함께 살아낸 우리 모두의 추억입니다.